시를 생각하면서
코끼리 주파수 김태형
바위처럼구름
2018. 5. 11. 08:53
코끼리 주파수 김태형
오래 굶주린 사자떼가 무리 지어 사냥에 나서듯
마른 땅에 갈기를 흩달리며 들불이 번진다
그곳에서도 물웅덩이를 찾아낸 코끼리 한마리
느릿느릿 온몸에 검붉은 진흙을 바른 채
무겁고 차갑게 타오르느 황혼을 기다리고 있다
말라죽은 아카시아나무숲과 힌 구름너머
수 킬로미터 떨어진 또다른 무리와
젊은 수컷들을 찾아서
코끼리는 멀리 울음소리를 낸다
팽팽한 공기 속으로 더욱 멀리 울려퍼지는 말들
너무 낮아 내겐 들리지 않는
초저음파 십이 헤르츠
비밀처럼 이 세상엔 도저히 내게 닿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그런 말들이 있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오래고 오래되었으면
그 부르는 소리마저 이젠 들리지 않게 된 걸까
나무껍질과 마른 덤불로 몇해를 살아온 나는
그래도 여전히 귀가 작고 딱딱하지만
들을 수 없는 말들은 먼저 몸으로 받아야 한다는 걸
멈으로 울리는 누군가의 떨림을
내 몸으로서만 받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물녘이면 마른 바닥에 먼 발걸음소리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