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오롯이 나에게 말하기

바위처럼구름 2024. 9. 22. 11:13

살다 보면 뜻대로 전개되지 않는 일들이 무수히 나타난다

이해하지 못하여 분노하다가도 안으로 삭혀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것이 아닌 줄 알았는데 전개되어 가는 모양새가 속았다는 기분이 들면 화를 내다가도 이내 맞닥뜨려지는 상황으로 이내 이해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는 적잖이 기대와 실망을 겪으며 살아온 세월의 영향도 있겠지만 유독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또 다른 기분 좋은 일들이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여행, 향적봉, 야생화는 오랜만에 참가 신청을 하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향적봉에서 무주구천동으로 내려가는 코스는 수년 전에 참여했던 산행길로 가물가물한 기억 한 편에서 또렷이 자리하고 있어서 더욱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으로 향한다는 태풍은 이해할 수 없는 회전 각도를 갖고 우리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일기예보는  매시간 우산표시를 보이고 여실히 비는 어찌 그리 지속적으로 내리는지 애초부터 짐작하게 만들었다.

이른 시간의 출발, 강렬한 바람과 빗속에서도 취소 없이 진행되는 여행, 역시 잘 채워지지 않는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는데  예상에도 없던 가이드에 밀려 옮겨온 산악전문가의 동행, 모임 주최자의 무신경인듯한 진행,  그렇게 시작한 버스여행은 성의 없어 보이는 김밥과 가이드의 마이크에서부터 시작된 능숙한 진행은 익숙지 않는 패키지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자유의지라고는  전혀 내세울 수 없는 구렁텅이(?) 속에서 오전 내내 익히 알고 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예기치 않는 학습은 무언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공포감 속에서 진행되고 마케팅 기술로는 너무나도 허술한 그들의 모습 속에서 저렇게도 쉬이 속아 넘어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습과 협박과 동조를 바라는 분위기에서 까칠한 나조차도 숨죽이고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은  오전 시간 내내였다.

물론 비가 이리 내리는데 별로 달리 할 것도 없지 않느냐는 내적 위안과 그래도 우중에서 산길을 걷고 싶었던 막연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맛있다는 점심과 나를 이번 여행으로 유인한 또 하나의 요소인 딸기 농장 방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는 야몰 차게 내리고 덕유산 곤돌라는 낙뢰로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또 번복되어 가능하다고 하고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도 향적봉으로 통하는 길이 통제된다는 가이드의 연방 쏟아 내는 소식은 오락가락하는 비만큼이나 야속하고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며 통제된 상황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순한 어린양의 모습이 점점 되어 가고 있는 듯하였다.

향적봉, 덕유산의 주봉으로 1614미터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곤돌라가 주봉 가까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는 지형 탓에 스키장이 잘 갖추어져 겨울시즌에는 미어터져서 곤돌라 타기에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곳으로도 이야기한다.

실망과 기대가 반복되고 기다리던 향적봉을 향하는 길은 빗속에서도 열려 있었고 곤돌라는 운행되어 짙은 안갯속으로 깊이깊이 끌어들이고 있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이랄까 겨우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오늘인 것인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다섯 명의 생각은 각기 달랐다. 한 분은 배낭을 지고 와서는 걷고 싶었는데 마음 툭 내려놓고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하면서 아쉬움이 많아 불만이 분출되고 있었다. 곤돌라에 난 작은 창으로 목을 내밀고 자연을 조금이라도 즐기고자 시선으로 즐기는 분도 있었다. 난 그냥 가만히 앉아 곤돌라 투명창에 끼는 수증기를 연방 닦아내며 겨우겨우 보이는 짙은 안갯속 근거리 경치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간혹 비가 많이 내린 탓에 곳곳의 물길은 세차게 흐르며 약간의 위안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설천봉 정상, 곤돌라의 기착지이다 

여기서라도 덕유산의 운치를 느끼고자 안개 자욱한 길로 다가가서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먼발치로 보이는 건너편 산은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까이 보이는 산도 언뜻언뜻 보여 주기 시작한다. 몇 분이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었고 카메라를 내밀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사진을 찍어 달라 신다. 멋진 경치에 또 사라질지도 모르는 광경을 담지 않고 서는 안된다는 심정으로 또한 그곳에서 나 주인공이 되리라는 심정으로 아니 이 한컷이 나의 추억거리로 남겨 둘 테야 하는 심정으로 시선으로 그리고 휴대폰  카메라로 담고 있다. 소녀가 된 심정이 이러리라.

향적봉은 오리무중이었다. 누군가 저기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가만히 열어주는 안갯속으로 산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몇몇 분이 가길래 따라가 보는데 이내 안개는 걷히고 향적봉을 향하는 산길이 길을 튼다. 기대감이 현실로 다가오는 기분은 아 저 높은 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앞서면서 평지 같은 상황에서 오르막이 길을 이끌고 있었다. 숨이 차기도 하지만 향적봉은 오늘의 나의 목적지가 아닐런가. 몇 분은 힘들다고 다시 내려오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나는 올라가고 야만다는 오기가 앞세운다. 그러지 않고서는 오늘의 나는 실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심정으로였다. 

향적봉은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세상이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히고 그 따라 인간사의 시름이 걷힌다면 저리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는 마음을 품게 한다. 전개되는 광경들을 신비롭다고 하는 것은 조금 전까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내 시야로부터 안개가 걷힌 까닭인 것이다. 내 마음의 안개도, 구름도, 시름도 이처럼 걷어 낸다면 내 앞의 누군가도, 상황도, 아름답게만 바라다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조금씩 보여준 야생화도 카메라에 담다 두었다. 

많은 분들이 향적봉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나도 한 컷 찍었다. 몇 분 찍어 드리기도 하면서 또한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광경은 모든 것을 씻어 낼 수는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즐기리라는 심정으로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댔다. 곤돌라를 타고서 내려오는 아마 마지막 일행이 된 동년배 세명은 조금은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행의 막바지를 즐기고 있었다. 짙은 안갯속에서 참 굿은 빗속에서 만든 향적봉을 생각하면 떠 올릴 수 있는 추억하나를 더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