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와 테이프
한국어 사전에
반창고를 연고나 기타 붕대 재료를 피부에 붙이기 위하여, 파라고무, 발삼, 라놀린 따위의 끈기 있는
물질을 발라서 만든 헝겊이나 테이프라고 설명하고 있다.
테이프를 종이나 헝겊 따위로 만든 얇고 긴 띠 모양의 셀로판에 접착제를 바른 오라기(가늘고 긴 조각)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반창고는 내 몸에 난 상처를 아물게 하거나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고 테이프는 사무용품으로서 찢어진 종이에 가벼운 종이를 메모판이나 벽의 적절한
곳에 부착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도구이다.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의 액정이 깨졌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새로 장만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고서 벌어진 일이니
마음을 그리 담담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액정이 깨어진 것은 관악산 등산을 하면서였다.
예전같이 연주대까지 올라간 것도 아닌데 트레킹이라 산 중턱에 있는 경치 좋은 곳에서 쉬는 시간에
가방 외부 주머니에 넣어둔 폰이 바위 위에 툭 떨어지더니 정중앙의 상단부에 팍 찍힌 자국이 나더니
균열의 기미가 보였다. (사진 1)
애써 진정해 보려 했다. 쪽 팔리기도 하고 함께한 동료들에게 지금 내가 가진 심정을 겉으로 더러
내놓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가방 깊숙이 폰을 넣어 두고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새로 마련한 핸드폰인데 다가 그것도 오랜만에 신형으로 산 폰인지라 애착을 가지려는 찰나
몹쓸 지경이 되어 버린 듯하여 마음이 좀 쓰렸다.
이내 진정하고 꼭 찍힌 부위에 반투명 테이프를 붙였다.
내 몸에 난 상처였으면 반창고가 제격이지만 내 맘만 쓰릴뿐 폰은 그리 아플 것 같지도 않고
액정은 겉으로 흠짐이 생겼을 뿐 선명하게 내가 요구하는 대로 보여 주고 있으니 시각적으로
조금 불편할 뿐이고 반창고를 바르며 새살이 돋기를 바라거나 그 파손 부분들 되돌릴만한 약재를
안으로 덧입힐 수 없는 탓이었다.
아직은 쓸만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햇빛에 비춰 보았을 때 발견한 건 고양이 코였다.
아니 그렇게 이름 짓고는 허허하고 웃음 한 번 웃어 버렸다.
콕 찍힌 자리로부터 새우 수염 같기도 하고 고양이수염 같기도 한 균열이 점점 퍼져 가서는
폰의 모서리까지 번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아니 이리 귀여운 것이 나에게 찾아오다니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언젠가 어느 여인네의 집에서 검은색 페르시안 고양이를 안았던 적이 있다.
우아한 자태는 나를 그녀에게 마음을 뺏길 만하였다.
처음 방문한 그녀의 집 소파에 앉은 나를 경계심이나 불안한 기색 없이 무릎 위로
다가와 가볍게 앉아 온 것은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그 분위기를 아마 눈치껏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그때 느낀 그 따뜻한 감촉이 생각이 났다.
어릴 적부터 동물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길 가다가 고양이를 마주하면 나를 보고
무서워하는 듯한 고양이도 어느샌가 두려운 듯 걷고 있는 나를 보고 빤히 쳐다보는 고양이를
멀리 둘러 지나간 적이 몇 차례 있는 나였는데 그리 달갑지도 살갑지도 않은 고양이를 내 폰에
그것도 검은색으로 갖게 되었다.
두 번째 액정이 깨졌다.
지속적으로 고양이는 자기 수염을 자랑이라도 하듯 손톱으로 액정면을 긁어 대면 조금씩 턱 턱 걸리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을 인지하는지 나에게도 불안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채 액정에 금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느낄 즈음에
집어던진 것도 아니고 내게 온 고양이가 그리 불편하거나 마음을 상하게 한 것도 아닌데
폰을 검색하다가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툭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진 내 폰은 뒤집어 진채 나의 불안한 예감을 알기라도 하듯 뒤면을 드러내 놓은 채 가만히 있었다.
들고서 액정을 살피기 전에 바닥면을 살피는데 평평한 면이어서 찍힌 자국이 없어야 하는데 하였지만
첨부의 사진과 같이 여러 군데 파손의 자국이 선명해 보였다.
그러면서 내심 체념한 듯 나는 마음으로 퍼뜩 꽃이 피었다 했다.
점점 불꽃이 터져 번진다 했다.
자포자기의 심정이 더욱 나를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마음을 살갑게 누군가에게 드러내 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성격인 탓에 냉정하다는 첫인상을 많이 받는다.
그녀도 그랬다.
쉽사리 다가섰다가 엉뚱한 봉변을 당할까 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상처받은 마음에 위안의 반창고를
붙여줄 만한 인성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몇 번의 데이트는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기에 앞서 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대화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비추어 생각하면서 알아 차린 부분에서 이해까지 할 수 있고 배려와 적극적인
함께하면서라는 전제하에 생각을 확장해 가는 대화의 전개는 관계의 돈독함을 더하는 단계가 될 것이다.
그런 과정에 서로가 가진 상처에 아픈 흔적에 임시방편으로 감추기에 제격인 테이프가 아니라
상처에 배인 흠을 소독하고 패인 살갗을 재생시키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차단하는 반창고 같은 마음들과 태도는
더 깊은 마음속의 상처까지도 다독이면서 새로운 피부로 드러내는 상태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나 그렇듯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가벼워져 있고 나를 먼저 생각하는 욕심이 앞서는 모습들을 내게서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내가 혼자로 버텨(?)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말이 참 길다
그래서 내게 온 고양이도 이어서 온 그리 아름답지도 않는 그 꽃도
내가 그리 탐탁하게 여길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런 내게는 그 액정이 새까맣게 내 심정모양으로 되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그리하여 폰으로 노트해 둔 게 많은 이 폰의 데이터가 다 날아가 버려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온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 졸음이 쏟아지는 밤이다.
ps. 사진으로 보여 줄 수 없는 수 많은 균열이 나를 가슴 아프게 한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