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걸으며
-김영무
등산로 입구
뭇 발길들이 꽝꽝 다져놓은
단단한 흙길
경칩 다음날 비 개인 아침
경시엔 딱딱하던 그 길은
는개비 가랑비에도
진흙 죽탕
그러나 그 입구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금세 푹신한 산허리 낙엽 밟힌다
발목까지 빠진 엉망진창 신발짝
눌눌한 억새 풀섶에
썩-썩- 닦아 신고
한참 산길 걷다가
고개 들어 산을 본다
바람결에 얼핏
동박새 울음 같은 산새 소리
산은 새소리마저
샇아두지 않는구나-
밟으면 밟을수록
풀밭은 더욱 푸르다지만
밟히고 밟힌 김에
스스로 밟고 또 밟아
꽝꽝 다져진 길
우리네 마음길
물 한방울 빠지지 않는
단단한 길
가랑비에 여우비에
진창길 된다
장마비 열사흘 퍼부어도
물 쑥-쑥- 스며들어
늘 눅눅한 길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산길은
진흙탕길 되지 않는다
김영무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창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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