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0

마른 붓 그리고 별

그날 이후 맥 빠진 내 모습을 본다딱히 나에게 신변의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일상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다그 전날까지 참여하는 모임에서 열게 될 전시회에 참여하고자몇 날 며칠을 먹을 만들고 붓을 들고  시 한 편을 국전지에 글씨를 썼다몇 번의 선생님의  주먹으로 고쳐주신 부분을 되씹으며 몇십 장을 써내 온 것 같다그래서 그날 낙관을 찍고 출품원서와 함께 제출하였다.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늦은 시간에 선생님과 뼈 없는 닭발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옆자리 동문수학중인 한 분이 늦은 시간 뉴스를 검색하면서 놀란 듯그 시간 벌어지는 상황을 알려주었다섬뜩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귀가를 서둘렀다.아니 더 이어갈 수 없는 분위기가우리들의 대화중에서도 감지되고 있었던 것이 이유였는지도 모른다.난 집으로 왔..

나의 이야기 2024.12.07

그녀는 5

그녀는 능소화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으로 기억한다그녀를 그리워한다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은 시간의 무게와지금 마주할 수 없게 되었거나 아쉬움이 남은 탓일 것이다 구중 궁궐에서나 피어날것 같은 전해들은 사연은 어쩌면 쉬이 발견하게 되는 관계속에서 보게 되겠지만당사자의 입장에서 허한 가슴속에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어서 일것이다 이제는 동네에서 지나는 길목마다 연주홍빛 능소화는 매번 마주하면서 그 이름을 알기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그런 꽃이었지만언제 부터인가 가슴 두근거리게 하고야 만다축대위에 자리잡은 초등학교 둘레로 해높은 여름날 소풍나온 어린애 마냥 상그럽게 고개 내밀고 있던 그래서 지나며 반가웠던 꽃이 지고 없어져 버렸음을 발견할때 까지 꽃의 이름과 함께 사연부터 들었고 학교 담벼락으..

나의 이야기 2018.12.05

그녀는 4

그녀는 내가 실연의 아픔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내게로 왔다 또 실연이라는 단어를 덮어 씌우고는 사라져 갔다 짧은 기간 불타오르는 연애감정을 쏟아 부어서인지그 녀로 부터의 거절의사는 분명코 커다란 파도처럼온 몸을 무장해제 시키고 그 속에 남은 심장은 바다를 표류하는 유리병 같아진다 몇 번의 무시(?)당하는 전화기 너머에는 점점 불안해지는 듯 하다가이 내 온갖 이유들을 끌여다 붙이고는 체념하고야 만다 어쩌면 그리도 힘들었을까 싶어서떠나기로 한 마당에 서로의 마음만은 질척거림으로 더욱 누추해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나의 이야기 2018.12.05

그녀는 3

그녀는 어제 저녁에 나의 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타고 온 차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반쯤 남은 위스키를 둘이서 바닥이 보일때 까지 마셨다택시를 불러서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다 먼지가 수북히 쌓인 내 차는 볼품 없이 서있다물론 어제 그녀가 몰고왔던 도요다에 비교도 안될 만큼이나나는 그녀에게 차를 돌려 주기 위해 그녀의 차에 올랐다그녀의 조수석에는 몇 번 타 본 적은 있지만운전석에는 탈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내 것이 아닌 도요다를 그녀의 집으로 보내어 주어야 한다운전석은 내게 맞지 않을 정도로 아늑했다백미러와 운전석의자를 전동으로 조작했다편리하다는 느낌보다는 익숙하지 않기에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그녀는 다시 조정해야 하는 수고를 더해야 할 것이다 도요다를 몰고 가면서나는 그녀의 집으로 그녀..

나의 이야기 2018.09.03

그녀는(2)

오래된 기억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정확한 사실보다는 내가 그려 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지기 쉽상이다 하지만 특징적인 것만은 쉬이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며 그것은 오랜 대화와 시간 속에서 만들어져 어떤 정형처럼 여겨져내내 그녀의 이름만 생각나도 번져오는 짙은 인상으로 남게된다 그녀는 계산에 너무나도 서툴렀다대화를 하면서 이해 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짐작으로 알 수 있었지만유독 셈하는 것에 서툴다는 것은 그녀가 나에게 구체적으로 말을 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어떤 날 과일을 사면서 한 개에 얼마를 주어야 하니 합쳐서 얼마이니까 하면서 지갑에서돈을 세어서 내는 법이 없다고 했다대충 근사치로 지폐를 건네고 가게 주인이 거스름돈으로 내어 주면 그대로 받고 나온다는 식이었다그녀를 처음 만난 날..

나의 이야기 2018.06.21

그녀는 (1)

그녀는내가 질문을 하면 항상 설명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말을 마친 그녀가 내게 물어오면난 대체로 짧게 대답을 하고 있다그녀의 자세한 설명을 듣다 보면내가 듣고자 했던 내용은 다섯 마디 정도에서 알아차릴 수 있지만말하기를 좋아하는 탓도 있겠지만완강한 반발이 있기 전까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는 듯이아니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을 이어나가고 있다물론 생소한 내용도 가끔 있어서 아하 하는 추임새도 나오기도 하지만대개의 말들은 이미 몇번인가 들어 왔다고 담박에 알아차리기도 하고어떤 경우에는 색다른 내용인가 하여 귀를 쫑긋 하다가도이내 아 그렇지 하면서 이어지는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 정도 이다그렇다고 그런 말을 또 해하는 반응을 보일 수 없을 정도의 열정적인 설명은 시큰둥하게 보이는 무..

나의 이야기 2018.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