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 오세영 5월 / 오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부신 초록으로 두 눈머는데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데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육신을 붙들고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푸르디푸른 이 봄날,그리움에 지친 장미는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자꾸만 손짓을 하고 오세영 시모음 2025.05.01
열매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르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세영 시모음 2024.01.14
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 오세영 시모음 2016.11.27
푸르른 하늘을 위하여 푸르른 하늘을 위하여 -오세영 사랑아, 너는 항상 행복해서만은 안 된다. 마른 가지 끝에 하늬바람 불어 푸르게 열린 하늘, 그 하늘을 보기 위해선 조금은 슬픈 일도 있어야 한다. 굽이쳐 흐르는 강, 분분한 낙화, 먼 산등성에 외로 서 문득 뒤돌아보는 늙은 사슴의 맑은 눈, 달더냐, 수밀도.. 오세영 시모음 2016.10.05
8월은 팔월의 시 오세영 8월은 오르던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오세영 시모음 2015.12.02
1월 1월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 오세영 시모음 2015.12.02
2월 2월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하려다 말고 돌.. 오세영 시모음 2015.12.02
3 월 3 월 오세영 흐르는 계곡 물에 귀기울이면 3월은 겨울 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숲에 귀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틔우는 대지에 귀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 오세영 시모음 2015.12.02
4월 4월 오세영 언제 우리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 뜨면 문.. 오세영 시모음 2015.12.02
6월 6월 오세영 바람은 꽃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 오세영 시모음 201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