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생각하면서

지족해협에서(유배일기) 공광규

바위처럼구름 2018. 8. 8. 11:47

지족해협에서(유배일기)    

                                            공광규


갯가 푸조나무 아래서 가을 단풍을 등불 삼아

향교에서 빌린『주자어류』를 읽다가 내려놓고

통무를 넣고 끓인 물메기국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해안을 한참 걸어가 만난 곳이 지족해협이라던가

연을 날리는 아이들과

굴과 게와 조개와 멍게를 건지고

갈치와 전어와 주꾸미를 잡는 노인들을 만나

이곳 풍물을 묻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참나무 말뚝을 박은 죽방렴에서는 

남정네들이 흙탕물에 고인인 멸치를 퍼 담고 있었습니다


갈대를 엮어 올린 낮은 지붕에는
삶은 멸치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는데

떼 지어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과 같더군요


아하, 이곳에서는 멸치를 미르치라 부른다는데

용을 미르라고 하니 미르치는 용의 새끼가 아닐는지요

미르라고 부르는 은하수 또한

이곳 바다에서 올라간 미르치의 떼가 아닐는지요


죽방렴에서 퍼넨 흙탕물 바가지에 담긴 멸치들을 보면서

인간의 영욕이라는 것이 밀물 썰물과 다르지 않고

정쟁에서 화를 당하는 것은 빠른 물살을 만나

죽방렴에 갇히는 재앙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꾸들꾸들 말라가는 지붕 위의 멸치와 다름이 없는 이 몸은 

남해의 물을 다 기울여도 씻지 못할 누명이거늘*

오늘 밤, 밝은 스승과 어진 벗이 그리울 뿐입니다



『사씨남정기』에서 인용



뭐 고향 선산이 있는 지역명이 나오길래

관심을 가지고 읽고 옮겨 적어 봄

남해 삼촌집 옆에 유배박물관이 있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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