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싱글 모임에서 가는 버스여행은 밋밋한 경우가 다반사였었다
전날 밤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잠을 설친 건 아니지만 사정상 잠이 부족하게 되었고 피곤한 탓에 출발하면서부터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또 밋밋한 버스 타고나서는 트레킹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옆자리에 앉은 여회원 님에게는 무례할 수 도 있겠지만 말을 건네기 시작하면 마음먹은 대로 잠을 청할 수 없으리란 생각으로 으레 건네는 닉이 무엇이냐는, 나이가 얼마나 되셨냐는 정도의 질문조차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흔들리는 버스에서 깊은 잠을 청하는 것도 욕심이지만 서로 아는 사이의 회원님들 간에는 안부인사와 가볍기도 하고 의미심장한 농담이 건네지고 있었고 옆자리에 앉은 동승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분주함이 한동안 진행되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시작한 잠은 짧게 끝이 난듯하고 이내 분주한 대화 들려오는데 건너편 자리에 앉은 두 분의 대화가 통로 쪽에 앉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하고 경상도 사람인 내가 좋아하게 된 인상적인 서울말의 여성분의 목소리가 곱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귀를 더욱 기울였을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얼굴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서로 건네는 말투가 점잖고 귀엽기도 하다고 여겨지는데 이에 응대하는 남자분의 말소리도 차분하고 호응하는 정도가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으로 듣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내용들은 일상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와 보편적인 상황이야기 정도였다고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간혹 홀로 된 사실에 대한 보호막이라도 치려는 듯 남에게 보이기에 근사한 가족 중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외국에 살고 있는 가족 이야기와 너무나도 반듯하게 사시다가 곱게 나이 드시고 딸인 자신에게 쏟아 내신 다정한 애정 표현을 기억해 내곤 이야기하기도 하는 내용들이 조금 흐뭇하게 들리기도 하였다.
이에 반응하는 남자 회원님도 일상에서 상대 여자분이 여자로서 힘겨워하는 부분에는 예를 들면서 대응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아들을 둔 아빠로서 딸 있는 분이 부럽다든지, 아들의 무심하고 결혼을 할 마음조차도 두지 않는 다든지 정도의 서로 무리하지 않는 대화가 연속된다. 물론 짧은 잠으로 해소되지 않는 피곤함 탓에 역부터 잠을 위해 자세를 취하면서 깜박 잠을 여러 차례 잔 것 같다. 간혹 깨면서 들리는 두 분의 이야기는 연속적으로 이어간 듯하고 그 시간이 도착지까지 근 3시간여였으니 대단하다고 여겨지기도 하였다.
먼 버스여행시간 이후에 펼쳐진 고산에서의 트레킹은 이건 산행이나 다름없다는 푸념이 난무하고 산정상은 다시는 오를지 않겠다는 다짐은 야트막하지는 않지만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은 긴 산행길이 정상 표지석까지 다다르게 하였고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게 이어졌다.
트레킹 도중에 준비해오라는 도시락을 꺼내 놓는데 다들 챙겨 오시는 정도가 1인분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음식을 나누는데 전혀 준비해 오지 않은 남성 회원들이 미안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부하고 남는다. 간혹 음식 솜씨도 자랑거리가 되는 푸근한 식사시간을 가졌다. 막걸리를 준비해 온 남성회원 탓에 두서너 잔을 기분 좋게 마셨다.
긴 시간의 산길 트레킹인 탓과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 탓 만은 아니지만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찍 차에 올라간 탓에 건너편 두 분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목소리와 말투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용모의 여자분과 역시 훤칠하고 깔끔한 남자분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예상은 그리 정확한 것이 못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힘든 산행과 약간의 알코올은 기분 좋은 잠을 잔듯하게 하였고 좀 개운하기까지 하였다. 자연스럽게 옆에 앉으신 여회원의 반응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신상을 서로 나누기도 했지만 E의 성격이 분명한 그분은 얼마나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내가 분명하게 느낄 정도로 산행을 오랫동안 해 오신 분이시고 우연히 알게 된 동성의 동생분과 함께 해외 트레킹도, 여행 경험을 늘어놓으신다. 순서를 정하여 말씀하시는 건 아니지만 기억나는 것들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의 해안지역, 오스트리아의 산들이 등장하고 마추픽추와 남미의 브라질을 시작하여 다시 베트남의 하노이가 등장하고 설명을 곁들이며 내놓는 특별한 경험들을 선명하게 기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실감 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호응하기는 나도 일가견 하는 까닭에 나의 많지 않은 해외여행 경험과 직장시절 출장을 빙자한 여행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얘기를 나눈 것 같다.
그런데 옆자리의 두분은 내용은 구체적으로 들을 수 없었지만 얼핏 더욱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갈 때 3시간여 지속했듯이 돌아오는 내내 대화는 이어지는 것 같았다. 중간 휴게소에서 남성분은 여성분에게 약간의 음료를 준비해서 건넨다. 여자분은 제가 커피를 잘 먹지는 않지만 고맙게 마시겠단다. 참 좋은 분들이 잘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구나 싶었다.
이러면서 드는 생각들이 많다.
중년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대화가 통하면 참 좋은 시간을 많이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이런 기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가 싶다. 그래서 싱글 모임이 유지가 되고 부정적인 역기능도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순기능도 참 많을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하면 어쩌면 거의 없다고 여겨지는 나로서는 누군가와 대화로도 할 수 있다면 좀 윤택한 삶의 부분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대화로 외로움이란 것을 온전히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기회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로움이란 것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하여...
최근에 숙제처럼 읽는 책의 앞 부분에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루이스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리는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라고 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물론 동의하지만 좀 더 실속 있게 누군가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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