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어느 여름날 2호선 출근길에

바위처럼구름 2012. 9. 22. 22:50

출근길 풍경

여름이 끝날 즈음

막바지 무더위가 꼬리를 살살 내리기 시작하던 어느 날

상긋한 아침 바람에 힌머리 살짝 날리면서

참 오랜만에 다시 출근하는 2호선 서울대 입구역

마을버스에서 시달린 지친 발걸음은

승강장의 붐비는 출근 인파에 무게를 더해가고

휩쓸리듯이 빨려들어간 거의 포기하다시피한

엉거주춤한 자세위로 흐르는 멘트는

어쩌면 포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찌는 듯한 상황을 각성하게 하였지만

그래도 숨쉴 수는 있을것 같다는 약한 냉기를 느끼고 있음에

안도하고 있었다

지긋한 나이임에 틀림없는 차장은

"이 전동차는 송풍과 냉방을 최대한으로 가동하고 있습니다"한다

수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누군가가 완벽하지 못한 냉방에 짜증썩인 불만을 전철내 전화로 따지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낙성대 역을 지나면서

좀더 절박한 심정으로 똑 같은 멘트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사당역을 지나면서

강남으로 가는 좀 더 젊은 친구들이 많이 갈아 타고 있구나 하고 느낄 즈음

"이 전동차는 송풍과 냉방을 최대한으로 가동하고 있습니다"한다

이어서 미안한 어투로 "이 전동차는 구형입니다"를 마지막에 덧붙이고 있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차장이 겪는 심적 부담감이 내게로 전해 오면서

나 또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 했다

"이 전동차는 송풍과 냉방을 최대한으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이 전동차는 구형입니다"

"이 전동차는 출근길에 갑자기 저와 함께 투입되었습니다"

"출근 시간이 지나면 이 전동차는 차량기지로 돌아갈 것입니다"

"최대한의 냉방이지만 견디기 힘드신 승객분들은 조금만 참아 주시고"

이어서

"다음역에서 정상시간으로 운행되고 있는 신형 열차로 갈아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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