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생각하면서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바위처럼구름 2017. 4. 10. 09:17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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