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인문학 강의록 베낌)/이진우

바위처럼구름 2013. 7. 8. 17:42

-인상적인강의를 듣고나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니체는 위험한 철학자 입니다

 

니체가 더 위험한 것은 스스로 이 점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간이란 존재가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을 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에 묘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인지 위험한 철학자 니체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유혹합니다.

여러분이 삶의 원리로 생각하는 것을 말해보십시오.

니체는 바로 그 원리의 허구성을 폭로할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니체의 인용문을 찾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반대되는 다른 인용문이 기다릴 것입니다.

니체는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참된 것, 진실한 것, 본질적인 것은"어쩌면" 그와 반대 되는 것,

즉 가상, 기만, 욕망으로부터 생겨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어쩌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이미 전복의 철학자,

모순의 철학자, 광기의 철학자 니체의 사상에 감염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니체의 위험성이 그의 "문체"에 있다고 합니다.

실제의 '삶'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에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시적이고

예술적인 문체와 수사학에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니체를 파시즘의 선구자이자 지지자로 비난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생동적이고 아름다운 그의 순수한 글과 문체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가 언어의 마법을 부리기 대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문체에 끌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그의 문체는 '삶의 양식'(Lifestyle)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니체 작품의 내용은 다양한 철학적 사상의 모음입니다.

이렇게 빚어진 문학적 인물은 언뜻 체계를 부정하는 듯 보이는 사상들로부터

하나의 '삶의 양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문학적 철학자 니체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유한 입장과

관점으로부터 하나의 '삶의 양식'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갖고 계십니까?

이 물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니체의 마법에 이미 걸렸을 수 있습니다.

니체가 1873년 이 발표한 <그리스 비극시대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철학은 건강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이론과 사상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철학'입니다.

 "철학을 살다." -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만약 니체를 삶의 이정표로 삼고 싶다면, 여러분은 니체 철학의 모순과 위험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야 합니다.

우선, 간결하고 강렬한 문체속에 숨겨진 뜻을 포착해야 합니다.

니체 스스로 말한 것처럼 "모든 철학은 또한 하나의 철학을 숩기고 있습니다.

모든 생각도 하나의 은신처이고, 모든 말도 하나의 가면입니다."

둘째, 어떻게 하면 니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니체의 말을 따르면 "깊이 있는 사상가는 모두 오해받기 보다는 이해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끝으로, 니체를 따르기 보다는 니체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니체에 의하면 삶이란 바로 "다르게 존재하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니체는 삶과 철학을 우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하여,

철학을 살기 위하여 어떤 관점을 가졌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니체의 위험한 핵심 명제에 맞닥드립니다.

"삶에의 의지, 나는 그곳에서 항상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삶과 권력을 파괴적인 대립관계로 파악했습니다.

니체 이전에도 권력을 문제삼은 사상가들은 많았지만 니체만큼

진정성을 갖고 현실적으로 파헤친 사람은 없습니다.

권력은 그 자체 악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황에서

누가 감히 삶(생명) 자체가 권력에의 의지라고 말하겠습니까?

마키아벨리보다 훨씬 더 나쁜 악한 책을 쓰겠다는 니체의 말에는

그의 급진성와 위험성이 드러납니다.

니체는 삶이 권력에의 의지하는 전제로부터 모든 것을 풀어냅니다.

우리가 니체의 철학을 권력의 대서사시로 파악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니체라는 사상가의 이름은 그가 사유하는 사태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니체라는 이름이 대변하는 사상은 다름 아닌 "권력에의 의지"입니다.

"신은 죽었다."

"초인."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니체의 이름을 따라다니는 이와 같은 수많은 명제들은 모두 권력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해석됩니다.

왜 신을 죽여야 하였을까?

어떻게 사람은 극복될 것인가?

너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다시 한 번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견뎌낼 수 있는가?

니체는 신, 인간, 그리고 구원을 모두 극단적인 가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믿어 왔던 토대를 던져버리는 것은 무모해 보입니다.

우리가 인간에 대한 믿음 없이 이 삶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신이 없는 세계는 아무런 구원도 목적도 없기 때문에 동일한 것이 영원히 회귀되는 세계입니다.

"의미도 목표도 없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실존은 영원회귀이며,

그것은 허무주의의 가장 극당전인 형식"이라고 니체는 단언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극단적 가설을 견뎌낼 수 있습니까?

나는 <니체. 실험적 사유와 극단의 사상>에서 "우리는 이제 니체를 읽을 수 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하였습니다.

니체 읽기의 전제조건은 니체사상의 위험성과 극단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니체의 위험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니체의 답은 간단합니다.

삶을 진실하게 마주하면 됩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진실한 자, 신에게 버림받은 사막으로 들어가 자신이 가진 숭배의 의지를

깨뜨려 버린 자를 나는 이렇게 부른다."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자는 모두 철학자 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삶에서 자신의 철학을 발견하고,

자신의 철학으로부터 삶의 양식을 창조할 수 있을지를 말해 줍니다

이제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떠나 봅니다.

 

1. 삶에의 의지? 나는 ㅡ곳에서 항상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하였다.

2. 세상에는 진짜보다 우상들이 더 많다

   이것이 이 세계에 대한 나의 "사악한 시선"이자, 나의 "사악한 귀"이다.

   여기서 한번 망치를 들고 의문을 제기해 본다.(우상의 황혼, 서문)

3. 내 말을 믿어라.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라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즐거운 학문)

4. 니체, 이 사상가의 이름은 그가 사유하는 사태를 대변하는 제목이다.(마틴 하이데거)

5. 권력은 그 자체 악이다.(야곱 부르카르트)

6.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로드 악톤)

7. 미지의 신에게 -나는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마지의 신이여,

    나의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당신을, 폭풍우처럼 나의 삶을 파헤지는 당신을,

    파악할 수 없는 당신은 나의 동적입니다. 나는 당신을 알고, 당신을 모시고 싶습니다(1864).

8.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르게 해석하였다.

    이제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칼 막스)

9.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집의 주인이 아니다.(지그문트 프라우드)

10. 수천 년 이래 최초의 책이자 미래의 성서이며 인류의 운명을 내재하고 있는

     인간적 창조성의 최대의 폭발.(이 사람을 보라)

11. <차라투스트라>는 내 저서들 중에서도 특별하다.

     나는 이 저서로써 지금까지인류에게 주어진 것 같운데 가장 위대한 선물을 한 셈이다.

     수천 년이 지난 뒤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이책은 이 세계 최고의 책일 것이며, 진정 준령의 분위기를 지닌 책이다.

12. 나는 나의 주위에 둘레를 치고 성스러운 한계를 그어 놓았다.

     산들이 높아질 수록 나와 더불어 오르는 사람은 더욱 적어진다.

     나는 더욱 더 신성해지는 산들로 하나의 산맥을 건설한다.

14. 나는 성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익살꾼이 되기를 원한다. 아마도 나는 익살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진리는 나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14. 문체를 개선한다는 것, 그것은 곧 사유를 개선한다는 것이다.

15. 상징과 비유에 관하여 : 상징과 비유로써 설득은 할 수 있지만 입증하지는 못한다.

16. 좋은 문체는 한 내면적 상태(pathos)를 실재로 전하고 기호, 기호의 템포, 몸짓에 대하여 어긋나지 않는 문체이다.

17. 차리투스트라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의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정신과 그의 고독을 즐기며 10년 동안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드디어 그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아침, 동이 트자 일어나 태양 앞으로 나아가 태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18. 차라투스트라는 홀로 산을 내려갔고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았다.

      (...) 차라투스트라가 가장 가까운 도시에 들어섰을때, 그는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것을 보았다.

      줄 타는 사람의 공연이 있다는 예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민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19. 아무튼 그 사람은 줄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목격한 바 있는 그런 눈으로 사람들의 깊은 속내와 바탕을,

     은폐된 치욕과 추함을 남김없이 보고 말았으니 그의 연민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 모든 것을, 사람까지 지켜 보고 있던 신, 그 신은 중어 마땅했다! 사람들은 그 같은 목격자를 두고 

      ㅜ이쑈다는 사실을 참고 견딜 수가 없으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더 없이 추악한 자"

20. 미친 사람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 "신이 어디로 갔는가?"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갰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 - 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즐거운 문학)

21. 모든 신들이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바란다.

22. 신은 너무나 극단적인 가설이다.

23. 우리는 현재의 우리 자신이 되고자 한다. 새롭고 유일무이하고, 비교불가능하고,

     자기 스스로가 입법자이고, 자기 스스로를 창조하는 인간이 되고자 한다.

24. 나는 그대들에게 위버멘쉬(Ubermensch)에 대해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모든 생명체는 지금까지 자신을 뛰어넘어 무엇인가를 창출해왔다.

     그런데 그대들은 이 위대한 조류를 거슬러 썰물이기를 원하며,

     인간을 뛰어넘기보다는 오히려 동물로 되돌아가기를 원한는가?

25. 사랑이란 무엇인가? 창조란 무엇인가? 동경이란 무엇인가?

     별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종말의 인간은 물으면서 눈을 껌벅거릴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하였다. 종말의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고 눈을 껌벅거린다.

26. 오 형제들이여. 내가 사람에게서 사랑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사람이 하나의 과정이며 몰락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대들에게도 나로 하여금 사랑을 하고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많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보다 놓은 인간에 대하여")

17. 살아 있는 자들을 발견한 바로 그곳에서 나는 권력에의 의지를 더불어 발견하였다.

     심지어 복종하는 자의 의지 속에서조차도 나는 주인이 되려는 의지를 발견하였다,

     약자가 강자에게 복종하는 것, 그를 설복시켜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은 약자에 대하여

     더 힘 있는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의지이다.

     주인이 됨으로써 얻는 이 기쁨은 살아 있는 자로서는 포기하기 힘들 일이다.(자기극복에 대하여)

28. 최대의 비중 - 어느 날 혹은 어느 밤, 한 악마가 가장 적만한 고독 속에 잠겨 있는 네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

     "너는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 온 생을 다시 한 번, 아니 수없이 몇번이고 되살아야만 한다.

      새로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즐거운 학문)

29. 다시 생겨날 수 있기 위해서는 소멸하기를 워해야 한다.

     한 날에서 다른 날로, 백 개의 영혼을 통한 변신 - 그것이 너의 삶, 너의 운명이 도도록 하라.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이 전체 계열을 다시 한 번 원하라.

30. 힘들의 세계는 감소하는 법이 없아. 그렇지 않으면 시간 속에서 무력해졌을 것이고 사라졌을 것이다.

     힘들의 세계는 정지하는 법이 없아. 그렇지 않으면 다 성취되었을 것이며, 존재자의 세계는 멈추어 서 있을 것이다.

31. 누가 이 경우 스스로를 가장 강한 자로 입증할 것인가?

     가장 절제하는 자들, 극단적인 신앙교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 대부분 우연,

     무의지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사항하는 자들 - 자기 권력을 확신하는 사람들,

     의식적인 긍지를 가지고 인간이 이룩한 힘들 대변하는 사람들.

32. 정신의 세 가지 변신을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는 어린애가 되는가.

33. 외경심이 깃들어 있는 갈하고 인내력 있는 정신은 많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정신의 억센 힘은 무거운 짐, 가장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무엇이 무거운가? 인내력 있는 정신은 이렇게 묻고 낙타처럼 무릎을 꿇어 짐을 충분히 싣고자 한다.

34. 새로운 가치의 창조, 쟁취,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하지만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가치의 창조, 쟁취, 적어도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 형제들이여, 자유를 얻어내고,

     의무에 대해서 조차도 신성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

35. 어린아이는 순결이며 망각이고 하나의 새로운 출발, 하나의 유희, 스스로 돌아가는 수레바퀴,

     최초의 운동,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하는 유희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36. 네가 다시 태어나기를 영원히 바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