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 이 되던 시절 문학사상을 구독하던 그 때
충격으로 다가 왔던 이 글 발표 이후의 현상들
가끔 어떤 특정지울수 없는 상황에서 머리가 어지러울 때 생각이 난다
특질고(特質考)
오영수
특질(特質) ̄한 말로 특질이라지만 이 특(特) 자 한 자만 하더라도 그 내포한 개념은 다양 복잡하다.
더구나 질(質)까지 합하면 더욱 복잡하고 광범(廣範)하다.
원래가 특성(特性)과도 통하고 기질과도 상통하지만 여기서는, 딴 데서 흔히 볼 수 없는 ̄ 그렇다고 해서 어떤 모양이나 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요. 또 오관(五官)으로 느낄 수도 없는 감성적, 심정적, 습관 이런 것들이 버릇화되어 버린 생활화 현상의 앙금이라고나 할까?
어느 민족,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특질 또는 기질이라고 해도 좋고 국민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뿐 아니라 한 민족 한 나라에도 지방 따라 그 지방의 특질 또는 특성이 있고 더 세분하면 한 동네, 한 집안에도 볼 수 있다.
세계 인류가 제각기 얼굴 모양이 다르듯이 그 언어 행동, 사고심상(思考心象)이 결코 같을 수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으나 단지 딴 데서는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유사, 즉 동류(同類)가 한 민족 한 사회의 오 분의 일을 공약수로 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민족 그 사회의 특질 또는 특성, 기질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관념적 부연으로서 그 개념이나 이해 파악은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그 구체적 실례를 들어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이를테면, 영국 사람들은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모욕을 당하거나 불쾌할 경우, 나비넥타이를 매만지거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결투를 상의한다든지, 미국인들의, 권총부터 쏘아 놓고 그 가족의 부양비를 계산한다든지, 셋만 모이면 혁명을 도모하는 독일인, 조의나 축하금으로 천 원짜리 수표나 약속어음을 내놓고 거스름돈 오백 원을 현찰로 받아가는 불란서, 담배 한 갑 값만 있으면 일을 쉬는 인도 사람들, 일본 사람들의 여차직하면 발도(拔刀) 하라키리(割腹) ̄.
이런 것들은 딴 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특성 또는 특질 또는 기질, 크게는 그 국민의 민족성, 국민성 ̄이 아닐까? 퍽 재미난 예가 있다.
이것은 어느 한가한 사람의 창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나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공감의 객관성이 있다면 사실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미국에서, 코끼리에 대한 연구 논문을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불란서에서는 코끼리의 사랑, 즉 로맨스에 대해서.
영국에서는, 코끼리의 사냥에 대해서 ̄.
중국에서는, 코끼리 요리에 대해서 ̄.
미국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코끼리에 대해서 ̄.
일본에서는, 진짜 코끼리를 세계에서 제일 작게, 또 진짜보다 더 진짜를 만드는 데 대해서 ̄.
독일에서는, 코끼리에 대한 연구 논문 상중하(上中下) 세 권을 그것도 겨우 서설(序說)로 내놓았다 ̄고 아무튼 그 진부(眞否)는 그만두고라도 그 나라대로의 국민성, 특성, 특질, 기질……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돌려 보면 더 잘 짐작이 간다.
이를테면 평안도의 지방적 에고와 섹트와 매서운 성격 ̄이것을 어느 친구는, 월북민의 실향(失鄕) 즉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하더라만…….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 옛날부터 임출맹호(林出猛虎)라고 했고, 그것은 싸움을 통해 뚜렷하다.
첫째, 말이 필요 없다. 그러니까 욕지거리가 필요 없고, 그러니까 욕의 발전이 없다 ̄ 이 샹간나……와 함께 딱!즉 고대 박치기 한번이면 그만이다.
그런가 하면 함경도는 산세가 험해서 그런지 첫째 우락부락, 억세고 무작하고…… 그래서 생활력이 강한 반면 운치나 멋대가리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왈가닥이다. 이런 것을 시속말로 와일드 또는 저지 ̄라고 하던가?
아무튼 지저분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도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 했나 보다.
강원도로 내려오면 이건 또 백날 여시(如是)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무덤덤이다. 밤에는 자고 낮에는 밭이나 쪼고 멋대가리 없기는 함경도와 마찬가지다.
강원도에서 자고로 두드러진 인물이 나지 않고…… 딱지가 붙은 암석노불(岩石老佛)은 그래도 돌옷을 입고 운치(韻致)나 있지만 그야말로 속절없는, 꾸어다 논 보릿자루다.
그다음이 서울인데 이건 또 너무나 대조적이다. 서울 하면 이조 오백 년의 도읍으로서 새삼스레 여기에 운운할 필요가 없겠다만…… 그러나 서울은 서울이요, 만승천자(萬乘天子)가 계시는 궁거(宮居)인 만큼 감히 백성 된 주제로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상황과 관념이 달라졌다.
대강대강 예거(例擧)해 보면 생산이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마는 우선 싹싹하기 청니(靑梨)같고 경위(經緯)가 빠르고 사리 판단 셈수, 그리고 체면치레 등……그러면서 외면치레, 물 찬 제비, 아침 부용(芙容花) 그러나 비단치마 속의 넝마, 부엌 부뚜막에 개가 ××할 만큼, 된장찌개 그릇에 불티가 뽀오얗게 앉아 있다.
하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수도의 공통된 생리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방에서 올라오는 유생(儒生)들과 돈푼깨나 모은 토반(土班) 토호(土豪) 들이 감투 중계 또는 장사, 이들을 상대로 생필품, 주로 귀금속, 피륙, 약재 등으로 살아가는 서울이고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서울에는 큰 인물이 없다. 나지 않는다. 알 수가 없다 ̄고들 한다.
…… 그럼 서울에 잇댄 충청도는 어떤가?
첫째 강원도와 마찬가지로 개성이 없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서둘 것도 없고 느릴 것도 없다.
서울과 강원도와 경상도에 시속말로 샌드위치가 돼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즉 중화(中和)가 돼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파격적 예외라고 할까……가 있다.
그것은 말이 느린 거다. 말이 느린 거야 비단 충청도뿐이 아니겠지만 특히 말꼬리의 ‘유우’다.
여러 말 그만두고,
저어어유우, 뒤에유우 담이 지금 막 넘어지는데유우…… 해서 담에 깔려 죽었다든가,
저어유우, 우리가 유우, 이집 머스기 하고유우, 저어기 옹당유우…… 옹당이라니…… 응 저 용당 늪 말이군. 예예 맞아유우. 게서 자맥질을유우…… 이때 벌써 아이는 십 리쯤 떠내려가 버렸다든가, 시집을 다녀가는 며느리가, 아버님 안녕히 기시유우 ̄ 이 유우가 끝나자, 서울역! 서울역!
다소 과장(誇張)은 있다고 하더라도 충청도 말은 이 유우를 때고는 말씀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다음은 영남으로 내려와서 우선 전라도로 말하면 참 재미나고 섬세하고 다양하다.
고 간드러지는 전라도 방언 ̄ 나긋나긋 감태같이 감칠맛 있는…… 그뿐이랴, 풍류를 알고 멋을 알고 음식 솜씨 좋고 옷을 입을 줄 알고…… 뭐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그런 반면에 결점과 하자(瑕疵)도 많다.
첫째 표리부동(表裏不同) 신의(信義)가 없다.
입속것을 옮겨 줄 듯 사귀다가도 헤어질 때는 배신(背信)을 한다. 그런 만큼 간사(奸邪)하고 자기 위주요, 아리(我利)다 ̄ 전라도에서 돈벌이 가온 놈 구경했나?는 세상의 정평이지만 그보다도 정말 재미있는 것이 욕이 어느 도보다도 월등 풍부하고 다양하고 지능적이다.
욕도 화풀이로 전해 오는 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느 도나 마찬가지지만, 이 전라도 욕은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임의자제(任意自製)로 창조를 한다. 그러니까 내용이 알차고 적절하고 풍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밤을 새워도 못다 할 예를 여기에 들기는 헛된 정력 소모와 종이의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각설하고, 왕창, 잣것, 몽땅, 살작, 사람 한번, 개땅쇠, 지랄…… 이런 어휘들은 전라도 사람들이 즐겨 쓰는 방언이다.
이를 테면, 사람 한번 살짝 미친당께. 확 걸어서 몽땅 가삐려. 잘들 가드라우 잉. 말로서 혀, 말로서 허랑깨. 그려, 나는 갯땅쇠여. 개땅쇠가 너 애비 뫼에 굴총을 놓당까여. 이 생피 붙어 화냥년 담 밑에서 오살을 할 놈. 야, 빠수(버스)가 만 원이건 이만 원이건 빨랑빨랑 타랑깨, 머저리 항바지야.
“아니 정 이럴랑가. 좋다. 히여볼라면 혀 봐.”
“그려, 니가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내고 말티여.”
“여기…….”
따지고 보면 삿갓[竹笠] 한 죽 중에서 두 장이 험이 있어 이걸 딴 거로 바꿔 줄 텐가 안 줄 텐가의 몇 푼 이해 때문의 싸움이다.
오늘 저녁에 세상없어도 결단을 내겠다면서 누가 먼저도 없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그렁깐대루 만 냥에 한 닙(일 원?)만 빠져도 만 냥 구실을 못한께로…….”
“그렁깐대루 한 달이 넘은 지금에 와서 그런 소리 헌다면 지난해 삿갓도 물어야 할께 아녀…….”
밤새도록 이런 식으로 시비다.
이게 무니(문어)는 무닌데 워째 오바 단추 같당가?
안 되겠다. 이러다간 한이 없겠다. 그만두자.
다음은 경상돈데 이게 또 재미있다.
재미로 말하면 전라도 못지않다.
전라도와 인접하고 내왕이 빈번해서 욕지거리도 거의 같다. 어디서 오랜만에 또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다짜고짜 아이고 이 문딩이야 ̄다.
이 때문에 한때 사회적 문제도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파 발음은 평안도 라 발음이 나로 변하듯이 모조리 포 자 발음이다. 파리를 포리, 팔이 폴…….
이런 따위야…… 별것도 아니지만, 그보다는 성격인데…… 이것도 한둘 예증으로서 그만둬야겠다.
첫째, 미련하고 붙임성 없고 눈치 모르고 무작하다.
그런 점에서는 쉐프트보다도 훨씬 뒤진다.
가령, 겨울밤 같은 때 초랑방 머슴들이 내기를 잘 한다. 밤이 기니까. 내기 중에도 손쉬운 게 두부 많이 먹기다. 나락(세경 받은 벼) 한 말씩을 타고…… 그러나 선뜻 나서는 것이 없다.
한 엄두리 머슴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이웃집 할머니에게 가서
“그 두부 좀 있겠는교?”
“있다 와?”
“묵구로요.”
“민 모나?”
“한 여나무 모 내와 보소.”
“혼자?”
“야아!”
“엄머나! 혼자서 열 모나…….”
“마아 내놔 보소.”
시금털털한 젓김치를 걸쳐 먹어 보니 십상이다.
열 모를 먹어치우고 강판 같은 손바닥으로 입 언저리를 문지르면서
“돈은 나락으로 주게요.”
그러고는 그깟짓 두부 열 모…… 자신이 있다.
“저어 내가 한번 묵어 보게요?”
여남은 사람의 좌중이
“그래 그래, 니는 묵을기다.”
이래서 한옆으로 짚북더기를 밀치고 두부 한 소쿠리와 김치 한 사발이 들어왔다.
한 모를 베어 문다. 맛을 모르겠다. 맛은 그만두고라도 우선 넘겨가 주질 않는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다. 김치를 더 얹어 억지로라도 넘겨 본다. 나락이 한 말이다.
그러나 넘어가긴커녕 먹은 것이 울컥울컥 치받는다.
이건 아무래도 무슨 조화다.
좀 전에는 두부 열 모를 단숨에 먹어치웠는데…… 이거…… 아무리 생각을 되풀이해 봐도 조화다. 분명 이건 조화다.
“ ̄안 되겠심더. 몬 묵겠심더.”
“아니 이 사람아, 한 모를 몬 묵다니…… 나락이 한 말일세.”
“압니더.”
“그러먼 이건 우리가 노놔 먹네.”
“야아!”
“아니 이 사람아, 나중 이렁저렁 말 없지러?”
“문딩이 처자(處女) 장가를 디리시먼 디릿지 안 되겠심더.”
“하긴 문딩이 처자(處女) 장가도 어렵기는 하지.”
싸움질도 참 걸작이다.
누가 크게 욕지거리를 많이 하느냐에 승부가 난다.
당장 살인이 날 것같이 엉겨붙으나 기껏 검맥(멱살을 잡는 것)으로 끝난다 ̄가 아니고 일 년이고 끄는 예가 예사다.
즐겨 쓰는 욕에는, 손발이 게발 망그러지도록(밥 얻으러 다닌다고) 또 옘병을 잡아다 은행에 저당을 해 놓고 자손대대로 이자만 뜯어먹어라. 이런 싸움이 끝이 날 리가 없다. 저녁 뒤에 침으로 다진 담배를 꽁꽁 재서 개울둑에 나가 건너편에다 대고 ̄네 이놈 아무개야아……. 곧 반응이 온다.
“한 술 처묵었시먼 자빠져 잘끼지 ×××× 나왔나?”
“네 이놈, 배은망덕도 분수지. 아홉 해 전에 니 애비 산역(山役)을 내가 했지.”
“허, 그래도 귓구멍은 뚫리 가주고 어데서 듣긴 들은 모양인데, 배은망득이 뭔지 알기는 알고 처시버리나. 일곱 해 전에 니 눔 집 짚배까리에 불이 났을 때 그때 못에 찔린 상채기가 아직도 시퍼러타. 네에 이놈. 이 밥 빌어다 죽 숴 먹을 노옴 ̄”
근자에 와서 교통이 발전으로 하루 생활권을 벗어난 지역이라곤 이미 없어지고 말았다. 그만큼 또 지방과 도심지의 인적 물적 교류도 신속 빈번해진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와 함께 또 그 지방의 특유한 풍습 또는 생활 전통 언어[方言] 특색도 뜨물에 막걸리 탄 것처럼 본적 불분명(本籍 不分明)이 되고 말았다.
언어학 또는 연구 또는 정책가들의 층에서 본다면 큰 성과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한 작가로서 동조는커녕 되레 적지 않은 저항을 마지않는다.
언필칭(言必稱) 내 것을 찾고[主體] 우리 고유문화…… 운운하면서 몇천 년 몇백 년 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악습마저도 문화유산이랍시고 허수아비 깨춤 추듯 날뛰면서 불과 열 손가락에도 차지 않는 ̄ 명맥(命脈)이 생생한 방언을 획일, 즉 언어 통조림을 만들겠다는 사고나 정책은 내 상식으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하다. 그보다는 과학ㆍ경제 일상생활품…… 우선 이것을 진정한 우리말로 한자(漢字)를 빼고 설명을 해 보라. 언어 정화(淨化)니 정리니 ̄는 한문 또는 한자음을(語順이 確實한) 우리글로 바꿔 놓는 것만이 결코 본의는 아닐 것이다.
……뒤로 입바이 빠꾸 오라잇! 이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신입(申込), 보합(保合), 사시미, 카바야끼……. 이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인간 대명사에 동성동명 이인(異人)은 너무나 큰 문제지만 우선 그 여자 하나를 놓고, 그메니 그미니 그네니…… 해서 이거 하나도 정리 정착을 못 하고 흐지부지가 아닌가? 어느 것이 더 급하고 필요한가는 다 같이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거듭하거니와 나는 아직 한 번도 ‘오랑캐꽃’, 일본말로 ‘수미래’, 서구 사람들의 ‘바이올렛’을 그대로 오랑캐꽃 또는 말꽃으로 쓴 적이 없다.
그 어감이 못마땅할 뿐 아니라, 그 고귀한 색깔이며 소녀의 입김 같은 애련 때문에 ‘제비꽃’이라고 써 왔고 여인의 젖꼭지와 유방 위의 자색으로 원형이 있다.
물론 우리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방면으로 물어보았으나 애매해서 나는 ‘젖무리’라고 썼다.
말이……란 글쎄 너무 차원이 낮은 상식론이지만 첨부터 있는 것은 아닐 거다. 즉 인간의 창조가 아니겠는가? 나는 한 작가로서 경유에 따라서는 말을 만들고 찾고 그래서 어휘 하나에라도 기여하는 사명감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도 어는 지방 버스 안에서 들은 예지만, ‘내 가고’, 즉 내 들바구니란 말이고 ‘다와이’, 즉 위가 넓은 물통 또는 대야 ̄가 그대로 통하고 있다. 어느 시골 과자점 유리에 ‘요강판다’는 쪽지가 붙었는데 알고 보니 ‘요오깡’이란 팥과 우무를 주원료로 한 떡인지 과잔지였다.
“ ̄말로서 허랑깨, 말로서 혀. 사람 한번 살작 미친당깨. 이 잣것이…… 그래. 잘들 가드라우이잉.”(전라도)
“ ̄우야꼬, 이 문딩이야. 내가 암만캐도 미쳤제. 저런 추끼…… 보름달인데 안 밝아. 사움은 말리고 중매는 부친데이.”(경상도).
“ ̄그러니껴. 니 헤(네 것)먼 어떻고 내 헤먼 어떤가? 개도 한 구시(구유)에 같이 묵는데. 앵그러니껴?(안 그렇습니까?)”(경북 지방)
“ ̄글쎄유우. 안녕히 기시유우.”(충청도)
“ ̄이 샹간나. 이보라요. 애새끼는 배고파 울지요, 내래 어케 살갔시오.”(평안도)
“ ̄차차 합시다레. 무우르, 무우르 한 그릇 주시오. 그래설나무네.”(함경도)
“ ̄아주방 뭍에서 왔슈꽈무?”(제주도)
“ ̄무우랑 배추랑 사려어. 어련할갑쇼. 둔(돈). 준말이야(존말이야) 어른 하시는 말씀에 천첩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까마는…….”(서울)
이 말을 하고파서 이렇게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논 거다. 다시 거듭하거니와 나는 앞으로도 방언을 사수할 작정이다.
- 《문학사상》(1979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