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생각하면서

원두

바위처럼구름 2013. 9. 20. 14:16

원두

 

                                                      고영민

 

원두를 넣고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기다려 커피 한 잔을 받아와 창가에 앉았다

꽃나무들이 물을 부어

꽃을 내린다

한철 허공에 필터를 받혀놓고

꽃차를 우려낸다

몇 차례 뜨거운 비가 꽃가지 사이를 왔다 갔나

올봄 당신은 저 나무로부터

몇 잔의 뜨겁고 진한 꽃차를 얻어마셨나

어제는 먼지가 이는 꽃나무 밑으로

외국인 노동자 몇 명이 흰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지나갔다

걸으명서 자꾸 자꾸 자꾸

입맞춤을 하던

달콤한 연인이 지나갔다

유치원생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전동흴체어를 탄 뇌성마비여자가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린 채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중년의 여자가 큰 개를 끌며,

끌려가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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