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른 붓 그리고 별

바위처럼구름 2024. 12. 7. 08:55

그날 이후 맥 빠진 내 모습을 본다

딱히 나에게 신변의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일상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전날까지 참여하는 모임에서 열게 될 전시회에 참여하고자

몇 날 며칠을 먹을 만들고 붓을 들고  시 한 편을 국전지에 글씨를 썼다

몇 번의 선생님의  주먹으로 고쳐주신 부분을 되씹으며 몇십 장을 써내 온 것 같다

그래서 그날 낙관을 찍고 출품원서와 함께 제출하였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늦은 시간에 선생님과 뼈 없는 닭발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옆자리 동문수학중인 한 분이 늦은 시간 뉴스를 검색하면서 놀란 듯

그 시간 벌어지는 상황을 알려주었다

섬뜩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귀가를 서둘렀다.

아니 더 이어갈 수 없는 분위기가

우리들의 대화중에서도 감지되고 있었던 것이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난 집으로 왔다.

 

며칠이 지난 아침에

바짝 마른 붓을 책상 위에서 발견하였다

다음날 사용한다든지 쉽게 붓을 잡을 만하면 그대로 두지만

붓 보호를 위하여 잘 빨아 두어 왔던 것인데

졸작을 완성했다는 이유도 아닌데 붓 씻어 두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마른 붓은 머금은 먹물이 다시 먹으로 되돌아 간 듯 단단해졌고 붓 끝은 날카롭다.

붓 끝을 만져보았다. 금방 피를 흘리게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쓴 글씨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 별이다

가곡을 좋아하는 나는 요즈음 시나 가곡을 선생님에게서

글씨를 받아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바람이 서늘도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나 홀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서정적인 감성으로 불러보던 노래다.

그런데 왠지

별이 다르게 보인다

십 년도 지난 그 날에 하늘로 별이 올라가는 것을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빛 바래져 가는 노란색을 보면 그 별들이 생각이 나곤 한다

 

12월 어느날에 인사동 어느 전시장 벽에 걸리기로 한 글씨인데 

걸릴지 내가 보러 가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걸릴 수 있을지 보러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는 5  (0) 2018.12.05
그녀는 4  (0) 2018.12.05
그녀는 3  (0) 2018.09.03
그녀는(2)  (0) 2018.06.21
그녀는 (1)  (0) 2018.02.10